오범석 아빠빽이 있다는 오명을 받았던 대한민국 풀백의 커리어 정리!

2021. 11. 24. 17:56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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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국가대표팀 출신으로 오른쪽 풀백에서 주로 뛰었던 오범석이 은퇴를 선언했는데요. 그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정든 그라운드를 떠날 것이라 개인 SNS을 통해 밝혔으며 올시즌 K리그 마지막 리그 경기로 유종의 미를 거둘 전망입니다. 여러가지 이슈들도 많았지만 월드컵 무대도 경험했던 그의 커리어를 간략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

 

 

K리그 포항 스틸러스 프로데뷔

 

1984년생으로 한국나이 38세인 오범석은 선수생활을 롱런한 케이스인데요. 181cm/79kg로 주포지션은 오른쪽 풀백을 소화했으며 말년에는 중앙미드필더와 때에 따라 센터백으로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오범석은 포항공고에서 유망주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고 그당시 함께 뛰었던 주요 멤버들이 황진성, 김동현 등 입니다.

 

포항 스틸러스의 유스격이었기에 포스코 구단의 지원을 받아 1년간 브라질 유학을 경험했고 2003년에 K리그 데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첫해에는 어린 나이에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2군에 있는 시간이 길었지만 2004 시즌이 시작되면서 유망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최순호 감독의 정책에 따라 기회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해부터 오른쪽 풀백은 물론 때에 따라 센터백과 미드필더 등 다양한 포지션을 경험하며 주전으로 올라섰고 팀은 전기리그 우승과 통합 준우승의 성과를 거두며 오범석 역시 좋은 평가를 받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이시기에 폼이 좋아져 결국 국가대표 데뷔까지 이루어내는 등 승승장구했고 구단에서도 재계약을 맺으며 그에 대한 신뢰를 보냈는데 이때에 바이아웃 6억을 걸어, 해외구단 이적 시 발동되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파리아스 감독 시절에도 꾸준하게 주전으로 뛰며 활약하던 가운데 오범석은 해외이적에 대한 갈증과 함께 이적을 도모하는 시기도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쉬웠던 해외진출

 

오범석은 해외진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고 결국 완전이적이 아닌 임대형태로 J리그를 가게 되었습니다. 요코하마FC였고 나름대로 주전으로 뛰기는 했지만 팀이 최하위로 떨어지며 강등되게 되었고 포항으로 복귀를 하는 과정에서 구단과 마찰을 겪으며 논란의 대상이 되더니 돌연 러시아 리그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 구단은 오범석 영입을 위해 바이아웃을 질렀고 이적시장이 끝나기 직전에 극적인 이적확정으로 유럽진출에 성공. 첫시즌에는 주전으로 뛰면서 MOM에 오르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이듬해부터 주전에서 밀리기 시작하더니 설상가상으로 구단이 재정난에 빠지게 되면서 팀을 나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몸값이 떨어진 오범석을 K리그 구단들이 관심을 보였고 울산현대가 과감한 투자로 영입에 성공하며 국내로 리턴했고 포항스틸러스 구단과 팬들 입장에서는 "배신자"로 불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내리턴, 울산과 수원 유니폼

 

2009시즌 본인의 고향팀이 울산현대 유니폼을 입으며 K리그 복귀했습니다. 애석하게도 복귀전은 친정팀 포항전이었고 준수한 활약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기도 했는데 2010시즌에는 왼쪽 풀백에 김동진이 영입되며 좌동진 우범석이라는 국대급 라인업을 가지게 되면서 팀의 상위권 성적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폼을 통해 김동진과 함께 2010남아공월드컵 엔트리에 뽑히며 출전, 후술하겠지만 여론이 안좋게되는 부진을 겪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월드컵을 참가했다는 경험을 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1시즌 개막을 앞두고 수원으로 트레이드되었는데 그 대상자는 센터백 강민수. 오른쪽 풀백으로 뛰었으나 팀상황에 따라 센터백을 소화하기도 했으며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수원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시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본래에도 스피드가 있는 유형은 아니었는데 20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스피드와 기동력이 떨어지게 되면서 상대 공격수가 스피드가 있는 유형이라면 약점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군입대 그리고 중국진출과 강원FC

 

사실 해외에서 K리그 돌아온 계기도 군입대가 걸려있었고 안산 경찰청 소속으로 2년간 뛰며 군복무를 완료했고 제대 후,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고 중국 항저우 뤼청으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폼이 많이 떨어진 상황에서 그는 주전이 되지 못했고 출전자체를 많이 못하며 아쉬운 시기.

 

그리고 2016년 겨울, K리그로 리턴했고 소속팀은 강원FC.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때에 따라 본래 그가 좋아하는 위치인 오른쪽 풀백이나 센터백으로 뛰었으며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잘이끈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20시즌에는 주장으로 선임되며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경기력을 끌어올리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결국 벤치에 있는 시간들이 많아졌고 구단에 스스로 먼저 요청하여 계약해지가 진행되었는데 아직까지 그는 그라운드에서 뛰고싶었던 지 은퇴를 고려하지는 않은 듯 했습니다.

 

 

 

 

 

 

 

결국 다시 포항, 그리고 은퇴

 

무려 13년만에 돌고돌아 자신의 첫 프로팀 포항으로 복귀했습니다. 일명 배신자, 뒤통수라는 이미지가 있기는 했지만 워낙 오래된 일이라, 최근에 포항팬들은 그를 반기는 분위기였고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으며 경험치를 통해 동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긍정적인 시각이 많은 편.

 

2021시즌 초, 때에 따라 주장완장을 다는 등 꾸준하게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부상이 잦았고 조금씩 주전에서 멀어지더니 출전시간 자체가 너무나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AFC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끝난 후, 그는 개인 SNS을 통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 밝히며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국가대표로써의 오범석

 

2005년 A매치 데뷔를 이루었고 핌 베어벡 감독의 픽을 받아 2007년 아시안컵 부동의 주전 오른쪽 풀백으로 활약했습니다. 수비가 안정적이고 그것과 비례하는 준수한 공격력까지 갖추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허정무호에서도 그는 지속적으로 부름을 받아 국대 경력을 쌓아간 편. 

 

그리고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비록 주전 오른쪽 풀백은 차두리에게 내주었으나 2옵션으로 선택되어 23인 엔트리에 들며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을 경험하게 되는데 문제는 바로 아르헨티나전. 허정무 감독은 차두리보다 수비력이 높다고 판단한 오범석을 아르헨티나전에 선발출전 시켰고 극도의 부진을 보이며 1:4 패배의 최대 원흉이 되어 네티즌과 언론에 제대로 까이게 되었습니다.

 

사실 당시 아르헨티나 공격진을 보면 오범석이 억울한 부분도 존재하는데 메시를 비롯하여 이과인, 디마리아 등 세계 최고의 수비진들도 그들을 막기 어려웠다는 의견도 존재하기는 했으나 오범석 스스로도 부진했고 워낙 뒷공간을 쉴틈없이 내주었고 실수가 잦았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조광래 감독 부임 후, 때아닌 인맥 논란의 주인공이 되는 등 국가대표 경력을 이어가지 못했고 최강희 감독이 부임하며 다시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특별한 활약없이 2013년 3월 국가대표 경력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A매치 43경기 2골

 

 

 

 

 

 

축구선수 오범석에 대한 TMI

 

01. 아버지에 의한 인맥논란

 

오범석의 아버지는 오세권으로 골키퍼 출신으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에 소속되어있던 인물. 그렇기 때문에 오범석이 국가대표가 되고 월드컵 출전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입김이 있었다는 인맥론이 계속해서 대두되는 편이었고 조광래 감독의 " 이회택 감독이 오범석을 억지로 쓰게했다 " 라는 발언을 통해 다시 한 번 논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조광래 감독의 일부 발언일 뿐, 그가 인맥만으로 국대가 되었다기엔 충분히 능력있는 선수.

 

 

02. 러시아 진출 과정에서의 아쉬운 행보

 

오범석은 J리그 임대를 다녀온 후, 계속해서 해외 진출을 모색했고 그과정에서 포항 구단은 그를 그냥 놔줄수 없어 성남과 계약을 미리 진행했는데 그 과정속에서 오범석과 구단은 서로 진흙탕 싸움을 가져가며 결국 오범석은 러시아로 떠나게 되었고 포항은 성남 구단에게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줘야하는 상황이 되어 대신 정성용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03. 친누나는 미스코리아 출신

그의 친누나 오유미는 2003년 미스코리아에서 미로 당선되었습니다.

 

 

04. 사람 목숨을 살린 기지발휘

2015년 K리그 경기도중, 정영총이 상대선수와 부딪혀 기절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오범석이 빠르게 기도확보 등의 응급처치를 가져가며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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